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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예기자24시] 故 신해철, ‘의식의 별’은 지지 않으리
기사입력 2014.10.27 23:40:22 | 최종수정 2014.10.28 14:5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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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스타투데이 조우영 기자] 신해철은 나쁜 사람이다. 자신이 한 약속을 끝내 지키지 못했다. 그가 2014년 10월 27일 오후 8시 19분 하늘나라로 떠났다고 소속사 KCA엔터테인먼트가 공식 입장을 밝혔다.

향년 46세. 최종 사인은 저산소 허혈성 뇌손상이다.
빈소는 서울 풍납동 아산병원 장례식장에 28일 오후 1시부터 마련될 예정이다. 아직 발인 일정과 장지 등은 정해지지 않았다.

신해철은 얼마 전 위 경련 증세로 서울 가락동에 있는 S병원을 찾았다가 장 협착증 진단을 받고 그곳에서 작은 수술을 했다. 그 뒤 심장 쪽이 아프다는 말을 종종 했다. 그러다가 해당 병원에 22일 새벽 재입원, 응급실에 머물던 중 심장이 멈춰 심폐소생술(CPR)을 받았다. 이후 서울 아산병원으로 옮겨졌다. 서울 아산병원에서 다시 복강 내 장수술 및 심막수술을 받은 그는 심장 기능을 잠시 회복했으나 6일째 의식은 찾지 못했던 상태였다.

당시 아산병원 의료진은 "수술 후 의식이 돌아오기까지 72시간은 지켜봐야 한다"고 했던 터다. 72시간의 기한은 25일 오후 11시께였다. 이 시간을 훌쩍 넘겼음에도 별다른 차도가 없자 이날 사실상 뇌사 상태라는 보도가 나오기도 했다. 소속사 측은 이를 부인했었다. 그가 언제라도 깨어나길 바라는 간절함 때문이었다.

◇ 강했지만 여리고 다정했던 남자

'숨 가쁘게 살아가는 순간 속에도 / 우리는 서로 이렇게 아쉬워 하는걸 / 아직 내게 남아있는 많은 날들을/ 그대와 둘이서 나누고 싶어요/ (중략) 내 삶이 끝나는 날까지 / 나는 언제나 그대 곁에 있겠어요 / 내가 사랑한 그 모든 것을 다 잃는다 해도/ 그대를 포기할 수 없어요'

1991년 발표된 신해철 2집 '마이셀프' 수록곡 '그대에게' 노랫말 일부다. 그리고 15년이 훌쩍 지난 올해 7월, 새 앨범 '리부트 마이셀프(Reboot Myself)'를 들고 그가 돌아왔었다. 약 6년 만이었다. 타이틀곡도 독특했지만 기자의 가슴을 먹먹하게 한 노래는 따로 있었다. '단 하나의 약속'이란 곡이다.

당시 매일경제 스타투데이와의 인터뷰에서 신해철은 이 노래에 대해 "아내를 처음 만났을 때 만들어 15년간 손질한 곡"이라고 소개했다. 흔하디 흔한 가벼운 '러브송'이 아니었다. 그는 "요즘 이런 진지한 노래는 안 먹힌다고 동료 뮤지션들이 그러더라"며 웃었다.

'단 하나 이거 단 하나 이것 하나 만큼은 맹세한다 내게 말해줘/ 어떡해도 하늘이 무너진다 해도 하나만 약속해줘 어기지 말아줘/ 다신 제발 아프지말아요/ 내 소중한 사람아/ (중략) / 돋보이지 않아도 남들이 뭐라 해도 좀 더 게을러도 괜찮아요/ 겉모습이 변해가면 함께 새 옷을 찾아다녀요/ 매달 예민해 지는날 내가 많이 웃겨줄께요.'

그가 한 '단 하나의 약속'이다. 아내 윤원희 씨와 아들 딸은 그가 놓을 수 없는 삶의 끈이었다. 신해철은 2002년 9월 3년여간 사귀어온 아홉살 연하의 윤 씨와 일본의 한 성당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1996년 미스코리아 뉴욕진 출신의 윤씨는 세계적인 금융회사 골드먼삭스 일본지사에서 근무하던 재원. 윤 씨는 신해철과 연애할 때 암 투병 중이었다.

신해철은 결혼 전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신해철은 자신이 DJ를 맡고 있던 SBS 라디오 프로그램 '고스트스테이션'에서 "아내될 사람이 암이라는 진단을 받았을 때 머릿속이 하얘지면서 아무 생각이 나지 않았다. 남편으로서 간호해주고 싶어 결혼을 결심했다"고 고백한 바 있다.

신해철의 오랜 지기이자 현 소속사 대표인 양승선 씨는 다음과 같이 회고했다. "주변에서 걱정하는 사람도 많았지만 그때 그가 그랬다. '결혼해서 잘못 되면 사랑하는 사람과 죽을 때까지 함께 하는 것이고, 아니라면 그녀와 더 오랜 시간을 행복하게 살 수 있지 않겠느냐'고." 그렇게 결혼한 신해철의 아내 윤 씨는 수술 2번에 방사선 치료 6개월을 받고 완치됐다.

◇ 벌써 그립다..그의 사람 냄새

신해철은 사람을 좋아했다. 한때 술 담배를 즐겼지만 결혼하면서 부쩍 건강을 챙겼다. 2012년 담당영 수술 후 체중 10kg이 늘어나면서 '건강에 적신호가 켜진 것 아니냐'는 우려를 사기도 했다. 그러나 약 두달 전 기자와 만난 그는 손사래를 쳤다.

그는 "젊었을 때보다 더 나쁘겠느냐"며 호방하게 또 웃었다. "예전에는 내 몸을 막 굴리고 살았는 데 지금은 그렇지 않다. 원래 술을 즐겨 하지 않았다. '수도꼭지로 술 따라먹는다는 소문이 있던데 왜 그런 말이 나왔는지 모르겠다. 술 마시는 것보단 그저 노는 걸 좋아했다. 술 몇 병 마셨냐가 아니라 오늘 몇명 모였느냐가 중요했다"는 게 그의 말이다.

최근 많이 변했었다. 날카로운 사회 분석과 통찰력은 여전했지만 혀에서 가시를 빼냈다. 그간 알게 모르게 너무 힘들었기 때문이다. 그의 요즘 행복은 오로지 음악과 가족이었다.

'마왕' 신해철이 너무 착해졌다는 농이 나오고 있다고 묻자 그는 "누군가 다음에 내가 쓸 음악에 액자를 갖다대고 있다는 현실은 불편하다"면서 "휴식 기간 동안 아이가 태어났다. 지금 첫째가 아홉살, 둘째가 일곱살인데 그 아이들이 나를 (어떠한 압박에서) 놓아줬다"며 은은하 미소를 지었다.

신해철은 요즘 '대세'인 아이들이 나오는 예능 프로그램을 보지 않는다고 했다. 그는 "내 아이들도 몇몇 프로그램에 출연한 적은 있지만 아이가 셀레브리티가 될 정도의 활동을 펴게 할 생각은 없다"고 부정적인 견해를 보였다. 아이들 사생활 보호에 문제가 있다는 주장이었다.

◇ '마왕' 신해철은 죽지 않았다

신해철은 1988년 MBC '대학가요제'에서 밴드 무한궤도 보컬로 데뷔했다. 이후 솔로 가수와 밴드 넥스트로 활동했다. '그대에게', '슬픈 표정하지 말아요', '재즈 카페', '인형의 기사' 등 다수 히트곡을 남겼다.

그는 가수이자 음악 프로듀서, 사회운동가로도 알려졌다. 사회비판적인 내용의 가사를 많이 썼다. 노무현 전 대통령을 지지하기도 했고, 대마초 비범죄화 주장, 간통죄 반대 및 폐지, 학생 체벌 금지 등의 의견을 개진하기도 했다. 이명박 대통령이 추진했던 영어공교육 정책은 비판했고, 신대철과 함께 왜곡된 음원유통 구조와 불합리한 한국 음악산업 전반에 대한 우려를 표명했다.

여러 사회적 문제의 중심에 섰던 그는 사랑 노래 대신 풍자가 깃든 메시지를 노래했다. 이 때문에 그는 일각에서 손가락질을 받기도 했다. 팬들 사이에서 그는 '마왕'이라는 별명으로 불렸다. 그룹 넥스트에서 크롭(Crom)이라고 불렸는데 이는 영국 정치가인 올리버 크롬웰을 본딴 것이다.

공교롭게도 신해철은 과거 한 방송에서 아내와 아이들을 위해 영상 유언장을 남겼다. 갑자기 세상을 떠나면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마지막 말조차 남길 수 없을 것 같다는 이유였다.

"다음 생에 다시 태어나도 당신의 남편이 되고 싶고 당신의 아들, 엄마, 오빠, 강아지 그 무엇으로도 인연을 이어가고 싶습니다."

그의 유언은 비단 가족들에게만 국한된 것은 아니다. 그의 노래는 영원히 그를 기억하는 사람들에게 남아 이어질 것이다.
신해철은 한국 대중음악사에 굵직한 족적을 남긴 별이다. 반짝반짝 빛나기만 하던 별은 더 큰 태양이 뜨면 가려진다. 하지만 행동하는 양심, 우리의 의식에 살아있는 별은 쉽게 지지 않는다. '마왕' 신해철은 죽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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