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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이병헌 “흥행·인기보다 배우 인생 최고 지점은…”
기사입력 2012.09.16 09:15:40 | 최종수정 2012.09.27 19:1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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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헌(41)은 배우 인생을 시계에 비유한다면 “지금은 오후”라고 했다. “벌써 오후냐?”고 되묻자 “깊은 밤도 좋지 않냐”며 치아를 드러내며 웃었다.

그 오후의 중간쯤에서 선택한 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추창민 감독)는 이병헌에게 첫 사극이다. ‘광해’는 조선 광해군 8년, 독살 위기에 놓인 왕 광해를 대신해 천민 하선이 왕의 대역을 맡게 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 팩션 영화다.

이 영화를 향한 대중과 평단의 반응은 뜨겁다. 개봉 첫날 17만명을 동원하며 흥행 청신호를 밝혔고, 4일 만에 100만 돌파를 앞두고 있다. 입소문도 좋아 “‘도둑들’에 이은 천만 영화가 또 나올 것 같다”는 얘기도 들린다.

최근 삼청동의 카페에서 만난 이병헌은 “분위기가 좋으니 은근 욕심이 생기더라. ‘놈놈놈’ 흥행(668만)을 넘어서는 게 아닐까 기대는 된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어휴, 천만이란 게 현실 가능한 숫자인가? 5분의 1이 봤다는 건데, 어마어마한 기록이다”고 했다. 그리곤 “흥행은 보상같은 선물이지 전부가 아니다”며 명작 ‘시네마 천국’ 얘기를 꺼냈다.

“오랜 기간 마니아가 있고 회자되는 영화가 좋아요. 제 출연작 중 ‘번지점프를 하다’나 ‘달콤한 인생’이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인 것처럼요. 제게 영향력을 끼쳤던 영화는 어릴 때 본 작품들인데, 제 인생에, 심지어 인성에까지 영향을 미친 영화들요. 그게 바로 ‘시네마 천국’이었죠. 제가 찍은 영화 한편이 한 사람의 인생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면 최고 지점이지 않을까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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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헌은 ‘광해’에서 정점의 연기를 보여준다. 실제로 “가끔 예전 영화를 보면 낯뜨거워질 때가 있는데, 그런 의미에서 최근작이 베스트”라며 우회적인 자신감을 표했다.

왕인 ‘광해’와 천민 ‘하선’을 오가는 1인 2역의 연기는 스크린을 꽉 채우며 관객들을 쥐락펴락한다. 4역이나 다를 바 없는 스펙트럼의 연기를 보는 듯 하다. 독단적인 카리스마를 가진 광해를 연기할 땐 날카롭고 예민한 눈빛을, 재치 넘치는 천민 만담꾼 하선을 연기할 땐 뜻밖의 발랄함으로 깨알웃음을 선사한다.

이병헌은 “옷(용포) 입는 방법부터 낯설었지만, 익숙해지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고 했다. 그러면서 “촬영장에서 거울을 봤는데 그런대로 어울리더라. 코미디를 하는 건 좋다. 웃기는 건 자신 있다”며 씨익 웃는다.

두 달여간의 고민 끝에 선택한 작품. 제작사 대표와 감독이 미국으로 날아와 설득할 때도 확신이 생기지 않았다고 한다. “시나리오는 만화를 보는 것처럼 재미는 있었지만, 실사로 표현하는 건 확신이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새로운 것에 도전하겠다는 마음으로 출연한 건 아니에요. 장르가 선택에 영향을 주지는 않았죠. 읽으면 읽을수록 배역에 빠져들고 해도 되겠다는 마음이 생기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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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닝타임 중 90% 가까이 등장하는 이병헌은 두 캐릭터를 오가며 관객을 웃고 울린다. 왕이 실내에서 볼일을 보는 장면에선 능청스러움으로 배꼽을 잡게 하고, 나라와 백성의 현실에 눈뜨게 되는 모습은 ‘울컥’ 하는 감동을 준다. 카리스마 ‘광해’는 그렇다쳐도, 엉덩이를 살랑살랑 흔들며 춤추는 ‘하선’ 역은 어렵지 않았을까.

“사실 그 장면을 찍고 손발이 오그라들어 쳐다보질 못했어요.(웃음) 감독님도 그랬던 것 같아요. 조금이라도 마음에 안 들면 다시 찍자고 하시는데 감독님의 ‘한 번만 더’ 집요함은 말할 수가 없어요. 김지운 감독은 그에 비하면 양반이죠. 하하! 그래도 ‘하선’을 연기하면서 한바탕 신나게 논 것 같은 기분이었죠.”

줄곧 20여년을 톱스타로 살아온 이병헌. 한류스타와 인기배우라는 양날개를 달고 아시아를 넘어 할리우드까지 진출했다. “만약 둘 중 하나를 내려놓아야 한다면 스타라는 부분이다”던 그는 “내 의지와 상관 없이 열광적으로 이유없이 좋아해주신다. 축복이다”고 했다. 하지만 “유일하게 후배들에게 얘기해줄 수 있는 건 연기다. 그 밖으로 넘어가면 꼬랑지를 내린다”며 머리를 긁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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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 한번 없이 승승장구해온 것 같지만, 남모르는 슬럼프도 있었다. 드라마 ‘백야 3.98’을 찍을 무렵 아버지를 떠나보냈을 땐 심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최악의 상황이었다. 이병헌은 당시를 인생에서 가장 힘들었던 순간으로 기억했다.

“아버지가 없다는 사실만으로도 내 인생의 격변기였어요. 아버지가 돌아가실 적에 많은 빚을 지셨는데, 집도 전세였죠. 그런 상황에 부닺히니 경제적인 것만이라도 신경쓰지 않게 된다면 더 이상 바랄 게 없겠더라고요. 그땐 안해본 거 없어요. 나이트클럽에서 사인회도 했어요.”

어느덧 마흔을 넘긴 그에게 옅은 주름도 보였다. 배우로서 나이를 먹는다는 건 매력적인 일일 수도 있다. 이병헌 역시 “노안이 되는 건 상관 없다. 나이를 먹으면서 깊이가 느껴진다는 말도 좋지만, 여전히 개구진 모습이 있다는 말이 좋다”고 말하며 소년처럼 웃었다.

영화 개봉도 못 보고 ‘레드2’를 찍기 위해 캐나다로 출국한 이병헌은 브루스 윌리스, 존 말코비치 등과 함께 엔딩 크레디트에 이름을 올리게 됐다. 그는 최근의 할리우드 활동에 대해 “또 한수 배우려고 간다.
그쪽만의 정서와 문화를 이겨낼 순 없다. 분명한 점은 이것이 내 최종 지점은 아닐 것이다”고 했다.

해외에 오래 머물다 보면 연인(이민정)과의 열애엔 차질이 없는 걸까. 결혼계획을 묻는 질문에 이병헌은 “남들 다 하는 거 하면서 살고 싶다”는 답으로 대신했다.

“배우 이병헌과 인간 이병헌이 동떨어져 있다는 걸 요즘 더욱 느껴요. 저는 보수적인 면이 많고 평범함을 지향하는 사람이거든요. 가족과 떨어져 살아본 적도 없고, 가족의 울타리, 아들로서의 도리, 가정 안에서 지켜줘야 할 것들을 중요하게 여기죠. 결혼하면 가정적일 거라는 믿음이 스스로 있어요.”

[매일경제 스타투데이 진향희 기자 happy@mk.co.kr/사진=강영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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