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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난 이를 애도한다는 것…테일러 셰리든 연출한 14일 개봉작 ‘윈드리버‘
복수와 애도의 슬픈 이야기…칸영화제 최우수 감독상 수상작
기사입력 2017.09.12 17:09:24 | 최종수정 2017.09.12 19:1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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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한 여인이 죽었다. 아니, 죽어간다. 너른 설원에서 열여덟의 젊은 여인 나탈리가. 윤간을 당한 그녀는 가해자들을 피해 달아나는 중이다. 인적 없는 차가운 눈밭을, 처절한 고통의 외마디 비명과 함께. 그러다 이내 넘어지고, 피를 토해내며 절규한다.
역설적이게도 외화면에선 아름다운 시 한 편이 들려온다.

"나, 그대와의 모든 기억을 여기 간직하려 한다/ 사랑의 눈길로 날 바라보는 그대여,/ 진흙탕 같은 현실 속에 얼어붙어가는 날 찾아준다면/ 그대와 함께 했던 이곳으로 돌아와/ 완벽한 위안과 안식을 찾으리라"(나탈리의 죽은 친구가 쓴 詩)

'윈드리버'는 차가운 눈처럼 시리고 아린 애도의 영화다. "그대와의 모든 기억을 여기 이곳에 간직하려는" 남겨진 존재들의 안간힘이자, 죽은 당신에게 "위안과 안식을 찾아주려는" 처절한 몸부림의 이야기. 그런데 애도란 무엇인가. 정신분석학에 따르면 애도란 상실의 고통으로 무너진 마음을 복원하는 과정이다. 이것은 사랑하던 누군가의 사별과 이별 모두를 포괄하는, 오랜 기간 고통의 시간을 감내해야지만 통과할 수 있는 회복의 행위다. 사랑하는 대상이 더 이상 이곳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 그 뼈아픈 부재의 현실을 인정하고 다시금 일상으로 복귀할 수 있게 됐을 때, 우리는 비로소 애도의 과정이 완수되었다고 말한다. 그러나 상실의 파고에 휩쓸려 사랑하는 이의 부재를 차마 인정하지 못할 때, 그 거대한 슬픔에 자아가 아예 부서져버렸을 때, 우리는 깊은 우울의 상태에 빠지곤 한다. 그렇다면 '윈드리버' 속 남겨진 이들은 이 힘든 과업을 어떻게 완수하는가. 가해자에 대한 용서와 견딤의 시간으로? 아니다, 영화는 우선 정반대의 길을 취한다. 철저한 복수와 응징이라는 길을. 극 초반 사냥꾼 코리 램버트(제레미 레너)가 설원에서 인디언 마틴(길 버밍햄)의 딸 나탈리(켈시 초우)의 싸늘히 굳은 시신을 발견한다. 나탈리는 3년 전 죽은 딸의 둘도 없는 친구. 이내 FBI 요원 제인 밴너(엘리자베스 올슨)와 지역 경관이 현장에 도착하고 시신은 수습된다. 이제 램버트는 이들과 함께 저만의 방식으로 가해자 추적에 나선다.

램버트는 기독교적 용서의 윤리관을 좇지 않는 남자다. "일곱 번이 아니라 일흔일곱 번을 용서하라"던 갈릴리 예수의 가르침보다 차라리 "복수를 하는 것이 인간적"이라던 니체의 경구를 그는 따르는 것 같다. 가축을 위협하는 늑대를 스나이퍼로 저격하듯, 나탈리를 죽음에 이르게 한 짐승 같은 가해자들을 그는 하나하나 조준해 죽인다. 그런 다음 최초의 가해자를 찾아내 나탈리가 죽은 방식과 똑같은 방식으로 죽음에 이르게 만든다. 이것만이 그에겐 죽은 딸과 나탈리를 진정으로 애도하는 전제 조건이었다는 듯.

이것은 잔혹한 처사인가. 분명한 건, 그 누구도 섣불리 그의 행위를 비난할 순 없단 것이다. 과정이 어찌 되었건, 죽은 이를 애도하기 위한 그의 선택은 지극히 윤리적이며 온당해 보이기까지 한다.
흰 눈이 옅게 깔린 저물녘의 야외. (대리) 복수를 마치고 돌아온 램버트와 죽음의 표식을 얼굴에 칠한 마틴이 나란히 앉아 죽은 이를 애도하는 이 영화 마지막 신에 이르렀을 때, 기어이 눈물이 흐르고 마는 건 그래서일 것이다.

슬픔을 눈물로 쏟아내는 것보다 억누르고 절제하려는 안간힘이 더욱 아프게 다가오는 영화다. 각자의 마음 한 어귀, 떠나버린 누군가를 애도하게 해주는 '윈드리버'는 올해 최고의 영화 중 한 편으로 손색이 없다. '시카리오: 암살자의 도시'(2015) '로스트 인 더스트'(2016) 각본을 쓴 테일러 셰리든이 연출했다. 14일 개봉.

[김시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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