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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사의 기로에서 투쟁하는 잠수부 ‘올드마린보이‘
기사입력 2017.11.14 15:01:02 | 최종수정 2017.11.15 09:1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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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욘드무비-184] 진모영 감독(47)은 다큐멘터리의 힘을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이다. 인간과 세계의 진실을 담아내는 그릇으로서 그는 이 다큐멘터리 장르에 대한 모종의 믿음과 확신을 갖고 있다. 2014년 11월 27일 찬바람 나부끼는 겨울, 그가 세상 밖에 내놓은 첫 다큐멘터리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부터 그러했다. 인생의 소중한 가치가 자꾸만 사라져가는 이 각박한 상실의 시대에 그는 '사랑'의 진실함과 '죽음'이라는 실존의 문제를 우리 곁에 화두처럼 던졌다.
89세 강계열 할머니와 98세 조병길 할아버지의 76년 인연을 자신의 카메라에 있는 그대로 기록하는 방식으로 말이다. 고운 색감의 커플 한복을 차려입고 언제나 두 손을 마주 잡고 다니는 이 노부부의 일상은 바라봄 그 자체로 감동적이었는데, 이것은 비단 어느 한 개인의 감흥 차원을 뛰어넘는 것이었다. 이 영화가 480만 1873명 관객이라는 다큐멘터리 장르로서는 유례없는 흥행을 거두었던 건 그래서일 것이다.

진 감독 자신의 표현에 따르면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는 "우연적이고도 운명적인 만남"에서 출발한 영화였다. 어느 날 문득 텔레비전 리모컨을 돌리다 KBS 시사·교양 프로그램 '인간극장'을 보게 됐는데, 이때 주인공이 강계열·조병길 노부부였다. 그 순간 그는 다큐멘터리를 통해 이들의 얘기를 "전 세계인들과 공유하고 싶다"는 생각을 품게 됐고, 수소문 끝에 노부부를 찾아간다. 이미 방송에 한 번 출연했음에도 노부부는 자신들의 삶에 카메라를 또 한번 들이대는 걸 흔쾌히 허락했다.

"이충렬 감독이 '워낭소리'를 찍으려고 전국 이장단 주소록을 겨우겨우 확보해 3년간 전화를 돌렸다는 설이 있다. 그에 비하면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는 내게 정말이지 우연적인 동시에 운명적으로 찾아온 영화였던 거다(웃음)." 지난달 24일 진 감독이 자신의 두 번째 다큐멘터리 '올드마린보이'를 선보인 후 기자회견에서 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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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히 본 '인간극장'이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 탄생으로 이어졌다면, 그가 3년 만에 선보이는 신작 '올드마린보이' 또한 KTX에서 우연히 접한 '머구리' 이야기가 계기가 됐다. 머구리는 수심 30m 해저에서 배와 연결된 산소 공급줄 하나에 의지한 채 해산물을 건져 올리는 심해 잠수부. '머구리'는 잠수라는 뜻의 일본어 '모구리'에서 왔다는 설과 개구리의 옛말 '머구리'에서 유래했다는 설이 있는데, 요즘 사람들에겐 다소 생소한 직업이다.

진 감독이 그날 잡지에서 읽은 기사는 잠수병에 걸려 장애인이 된 머구리들의 이야기였다. 식솔들을 먹여살리려 바다에 뛰어들었다가 두 다리를 내주게 된 머구리들의 애환이 읽는 내내 그의 가슴 안에 절절이 전해졌다. 그는 "파란 바다를 배경으로 머구리 잠수부가 투구를 머리에 얹고 바다를 등지며 카메라를 응시하는 장면은 지금도 기억에 새록새록하다. 이 머구리들의 삶이 꼭 '우리 인생에 대한 은유'라는 생각이 들었다. 반드시 영화화 해야겠다는 결심이 그때 섰다"고 회고했다.

머구리들의 생애에 죽음은 불가항력이다. 생과 사의 기로에서 하루하루 힘겹게 자맥질해야 한다. 이른 새벽부터 기압 높은 해저로 내려가야 하기에 지독한 잠수병이 생기는 건 기본이다. 만성 두통과 관절통, 난청 증세가 매일 같이 잇따른다. 주기적으로 병원을 가더라도 완치는 어렵다. 식솔들을 먹여살리려면 내일 새벽 또다시 심해로 내려가야 하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장애인이 되거나 사망에 이르는 경우가 부지기수인데, 개중 최악의 상황은 생명선인 산소 공급줄이 심해에서 끊어질 때다. 커다란 투구와 두꺼운 잠수복, 납 벨트와 쇠 신발 등 60㎏에 이르는 장비들을 바닷속에서 벗는다는 건 그 누구도 불가능하다. 머구리들은 이 순간이 오면 숙명처럼 죽음을 받아들인다고 한다. 매 순간 죽음을 염두에 둬야 하는, 엄혹하기 그지없는 삶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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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 주인공인 박명호 씨 또한 그렇다. 그는 탈북자 출신의 재래식 머구리(올드마린보이)다. 지금으로부터 10여 년 전 깊고 어두운 밤. 그는 6년여의 설득 끝에 아내 김순희 씨와 두 아들을 허름한 무동력선에 태운다. 아내가 동서남북으로 망을 보면 큰 아들 철준은 배 밑으로 새어 들어오는 물을 반복해서 퍼올렸다. 혹여나 겁에 질려 울기라도 할까 작은 아들 철준은 술을 먹여 재워 놓은 채로. 죽음의 공포가 검은 바다 위를 안개처럼 드리운 25시간이었다. 가까스로 탈북해 강원도 고성군에 정착했지만, 그는 지금도 그날 밤의 공포를 잊지 못한다. 어찌 잊을 수가 있겠는가. 영화는 그렇게 생사의 경계를 오가야 했던 위태로운 그날 밤처럼 지금도 매일같이 죽음의 공포와 대면하는 박씨의 삶을 가만히 들여다본다. "10명 중 5명은 포기하고, 3명은 죽고, 1명은 아프고, 단 1명만이 살아남는다"는 이 극한의 직업을 숙명처럼 짊어진 한 남자의 고독한 초상을.

사실, 원래 주인공은 박씨가 아니었다. 처음 염두에 둔 건 진 감독이 읽은 잡지 기사 속 주인공었다. 겨우겨우 수소문한 끝에 촬영 동의까지 구했지만 당사자가 잠수병이 악화돼 촬영 진행이 어려워졌다. 어떻게든 새 머구리를 모색해야 했는데, 그러다 만난 게 고성군 대진항에서 10여 년 째 머구리 일을 하고 있는 탈북자 박씨. 남과 북의 경계를 가까스로 넘어온 이방인으로서의 정체성과 생과 사의 경계를 매일같이 오가는 머구리로서의 정체성이 포개어지는 그의 생애는 다큐멘터리 주인공으로 적격이었다. 하지만 정작 그는 내켜 하지 않았다고 한다. 탈북자들이 "남한사회에서 선전하기 좋은 북한 사람"처럼 다뤄지는 걸 저어했기 때문이다. 진 감독은 "여러 번의 설득 과정이 있었다"며 "당신이 하고 싶은 진짜 이야기, 거친 이야기를 대담하게 모두 해도 좋다고 하니 마침내 제안을 받아들이더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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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남자의 날것 그대로의 이야기는 그렇게 카메라에 담겼다. 제작 기간 4년에 촬영 기간 3년. 영화가 시작돼 화면이 불을 밝히면 카메라는 우선 남북한 해수역 경계에 자리한 '저도 어장'을 한동안 응시한다. 매년 12월부터 3월까지 폐쇄됐다가 4월 1일부터 개장하는 곳인데, 이 '저도 어장' 오프닝 시퀀스가 매우 인상적이다. 출발 라인에 선 300여 척의 배들이 먼저 확 눈에 띈다. 해경의 허가 사이렌이 울리자 목 좋은 구역을 선점하려는 무수한 배들이 저마다 전속력으로 질주한다. 그때의 활력이 마치 프레임 바깥으로 거세게 뚫고 나올 기세다. 그러다 일곱 척의 머구리 배가 눈에 들어오더니 영화는 서서히 박씨의 삶으로 진입한다.

영화는 그의 고단한 밥벌이 현장을 거듭해서 보여준다. 그는 마치 수행하듯 매일 새벽 바닷속으로 뛰어든다. 거대한 쇠투구가 머리 위로 씌워질 때에 그의 표정은 비장하다 못해 자못 결연한 의지까지 느껴진다. 얼굴 마디마디 팬 깊은 주름은 죽음의 공포를 이겨내려는 한 남자의 안간힘을 보여주는 표식들이다. 60㎏에 달하는 무거운 머구리 장비들조차 그의 어깨에 짊어진 가장으로서 책임의 무게에 비하면 한결 가벼워 보인다. 그는 10여 년째 이 일을 하고 있지만 언제 찾아들지 모를 위험에 상시 대비한다. 20년 전 인민군 체조를 지금도 고수하며 꾸준히 육체를 단련하는 것이다. 자신의 삶이 조금이라도 연장되어야 가족을 그만큼 건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그는 두 아들에게 자신의 삶이 하루살이에 불과함을 누차 주지시킨다. 묫자리를 미리 알려주고 언제 찾아들지 모를 죽음에 대비할 것을 부탁한다. 내가 죽으면 그것은 머구리의 숙명이 다한 것이라 이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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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씨의 고된 작업 현장을 담아낸 이 영화 수중 신은 아름답다 못해 황홀하다. 머구리가 일하는 30~40m 수중을 롱 테이크로 찍은 장면들이 우리 눈앞에 여러 차례 펼쳐진다. 심해에서 대왕문어들과 사투하는 박씨의 모습은 대자연에 맞서는 신화 속 용맹한 전사처럼 느껴진다. 그런 그의 주변을 에워싼 푸르고 투명하기 그지없는 심해의 풍광은 그 자체로 아름다우며, 사위로 일렁이는 물방울들과 함께 심미적인 느낌마저 안겨준다. 국내 최고 수중 촬영 전문가 고태식·이정준 감독이 이뤄낸 결과물이다. 해당 시퀀스 얘기가 나오자 진 감독은 "실제 촬영은 바다를 찍기로 한 게 후회될 만큼 험난한 작업의 연속이었다"며 웃음 지었다.

"새벽 5시에 일어나면 하루 8시간 배를 탔다. 멀미는 덤이었다. 그냥 물속에 들어가면 되는 게 아니더라. 동해니까 무조건 깨끗하리라 여겼는데, 그것도 아니었다. 바다라는 자연도 봄 여름 가을 겨울 계절을 겪고 있었다. 봄이면 해초들이 피어났다가 포자를 퍼뜨린다. 이때를 아카시아 계절이라 하는데 물이 뿌옇게 변한다. 그러면 찍을 수가 없다. 파도 치고 해풍이 불어도 마찬가지다. 겨울엔 물이 어찌나 차던지 수중카메라맨이 10분을 못 견딘다. 셔터를 누를 수 없을 만큼 손이 시리기 때문이다. 이들의 안전을 위해 정말 조금씩 조금씩 조심하며 찍었다. 촬영에 3년이 걸린 건 그래서다(웃음)."

그러나 험난한 촬영보다 더 험난한 건 박씨의 생애 그 자체일 것이다. 엄동설한의 추위에서도 매일 같이 바다에 뛰어드는 그의 고단한 생애는 우리네 삶에 대한 탁월한 은유처럼 다가온다. 삶을 고해(苦海)라고 한다면, 박씨는 그 고통의 바다를 자처해서 매일매일 들어간다. 한마디로 '올드마린보이'는 한 존재가 생활의 엄혹함을 대하는 초연함을 너머 삶과 죽음에 대한 깊은 성찰까지 심해 저 아래로부터 길어 올리는 다큐멘터리다. 이 영화의 감흥이 작지 않다면 그건 아마도 그 모든 걸 기록해내는 카메라 자체의 진실함과 연출자의 진정성이 빛을 발해서일 것이다. 그렇게밖에 달리 설명할 도리가 없다. 이날 기자회견이 거의 끝나갈 무렵, 손을 들어서 진 감독에게 한 가지 질문을 던졌다. 앞선 생각에 대한 확신을 갖고 싶어서였다. "당신에게 다큐멘터리가 갖는 의미란 뭔가. 앞으로도 이 장르를 계속 고수하겠다면 그 이유가 무엇인가." 그의 답변은 이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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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가장 잘할 수 있는 게 다큐멘터리다. 앞으로도 이 장르만을 계속 찍을 것 같다.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를 만들면서 '사랑은 이런 거야'라고 했을 때, '올드마린보이' 의 박명호 씨를 통해 '가장들의 삶은 이런 거야'라고 말했을 때, 이들은 결코 화려함, 위대함과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그렇지만 사랑에는 반드시 참아내야 하는 것이 있고, 가족을 위해서는 누군가 헌신하고 희생해야 한다는 아주 단순한 진리가 이들의 삶에는 깃들어 있다. 이것은 결코 낡은 진리가 아닐 것이다. 미래에도 유효하고 지금 우리에게도 가치 있는 진리일 것이다. 이런 것들에 대해 좀 더 진지하게 바라보고 생각할 여지를 나는 충분히 관객들에게 전해 주고 싶다. 우리 시대의 보살, 우리 시대의 예수 같은 분들이 이 땅에 반드시 존재함을 발견하는 것이 우리 다큐멘터리스트들이 해야 할 일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이 시대 다큐멘터리스트로서 진모영 감독에게 우리가 더욱 주목해야 할 이유는 이것으로 충분하지 않을까. 그의 세 번째 다큐멘터리가 벌써부터 기다려진다.

[김시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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