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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그맨 같은 배우 정상훈 “내 꿈은 한국의 짐 캐리!“
기사입력 2018.02.14 16:01:01 | 최종수정 2018.02.14 16:5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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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조연배우다-7] 한 가지 고백부터 해야 할 것 같다. 기자는 그간 '배우 정상훈'을 잘 알지 못했다. 꽤 오래전부터 그가 드라마와 뮤지컬, 영화 등을 아우르며 활동해온 것은 알았지만 그게 거의 전부였다. '배우 정상훈'보단 '개그맨 정상훈'에 익숙했다. 예능 프로그램 'SNL 코리아' 때문일 것이다.

정상훈(42)은 2014년 신동엽의 추천으로 'SNL 코리아 시즌 4'에 합류한다. 처음에는 그다지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다. 그러다 '시즌 5'부터 눈에 띄더니 '시즌 6'에서 단숨에 스타로 도약한다. 가짜 중국인 기자, 그러니까 '양꼬치엔 칭따오'를 선보이면서부터다.

'양꼬치엔 칭따오'의 인기는 대단했다. 닉네임처럼 '정상훈'하면 '양꼬치엔 칭따오'가 따라붙었다. 칭따오 맥주, 피자헛 등 각종 CF 섭외가 이어졌다. TV를 틀면 시시때때로 그가 나왔다. "셰셰! 양꼬치엔 찡~ 따오! 양꼬치엔 찌잉~ 따아오레아!" 광둥어와 흡사한 '무늬만 중국어'랄까. 순식간에 전성기가 찾아왔다. 온 국민이 정상훈 이름 석자는 몰라도 '양꼬치엔 칭따오' 만큼은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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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정상훈 /사진=양유창 기자



정상훈을 배우로서 처음 인식한 건 영화 '덕혜옹주'(2016) 때부터였다. 그는 영화가 시작한지 21분쯤에 갈색 재킷 차림에 흰 머리 자욱한 남자로 등장한다. 독립운동가 출신 복동이었다. 전직 기자 김장한(박해일)이 일본 공항 바깥으로 나오자 기다리던 복동이 저 멀리서 그를 부른다. "성님!" 복동만큼이나 머리가 하얗게 새버린 노구의 장한이 왼쪽 다리를 절며 반가워한다. "이게 얼마만인가." "꼭, 30년 만이네유···."

일제강점기라는 고난의 시대를 온 몸으로 겪어낸 두 남자의 재회. 만감이 교차했을 것이다. 그렇게 두 사람은 서로를 부둥켜 안고, 설움에 겨운 복동은 이내 흐느낀다. "이렇게, 일본에서 또 뵙네유···." 적어도 '덕혜옹주'에서의 정상훈은 그간 보아온 가볍고 유쾌한 이미지와는 거리가 멀었다. 극 후반 덕혜(손예진)를 고국으로 탈출시키려던 계획이 수포로 돌아간 해변 시퀀스부터, 정신병원에 감금된 그녀를 찾아가는 자동차 신에 이르기까지, 그가 보여준 연기는 여느 때보다 진지했다.

이듬해 드라마 '품위있는 그녀'(2017)에서도 그는 다시금 배우로서 역량을 입증해낸다. 주인공 우아진(김희선)의 귀여운 남편 안재석으로 분하면서였다. 첫 회부터 커다란 웃음을 안겼다. 난데없이 숯검댕이 눈썹을 하고 나온 것이다. 남편이 한 눈 팔지 않으려면 눈썹부터 짙어야 한다는 무당의 조언에 아내가 혹한 것이었다. 그렇게 '능력남'임에도 어딘가 어수룩하던 그의 모습은 회차가 거듭될수록 시청자 사랑을 독차지한다. '정상훈의 인생연기'라는 말도 이때 처음 나왔다.

지난 6일 서울 충무로에서 그를 만났다. '개그맨 정상훈'을 넘어 '배우 정상훈'을, '인간 정상훈'을 알고 싶어서였다. 벌써 연기 경력 20년차인 그에겐 오랜 기간 감추어둔 커다란 심연 하나가 남몰래 웅크리고 있을 것만 같았다. 정상훈은 "배우로 데뷔했지만 '배우 정상훈'으로 나를 소개하는 건 지금도 어색하다"며 머쓱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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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종영한 JTBC 인기드라마 `품위있는 그녀`(2017)에서 주인공 우아진(김희선)의 남편 안재석으로 분한 정상훈은 인생 연기를 해냈다며 각광받았다. /사진제공=JTBC



-'품위있는 그녀' 하면 안재석 눈썹부터 떠올라요.

"이게 참, 어떤 때는 얇아졌다가 어떤 때는 두꺼워졌다가(웃음). 눈썹이 막 살아 움직이는 것 같지 않았어요? 중간부터 보신 분들이 많이들 그러시던데. 아니, '정상훈 분장팀 도대체 누구냐, 사람 눈썹을 저렇게 시커멓게 만들어 놓으면 돼?'"

-'인생연기'라는 말이 나올 만큼 호연하셨어요.

"그 덕에 배우로 조금 더 인정을 받은 것 같아요. '양꼬치엔 칭따오'가 아무리 브랜드 파워가 있어도 1년 정도하면 하향곡선으로 갈 수밖에 없거든요. 새로운 캐릭터들이 계속 나올 테니까요. 무언가 새롭게 발돋움 해야 하는데, 마침 '품위있는 그녀'가 도착한 거죠. 당시 이곳 저곳 드라마 문을 두드리고 있었어요. 그러다 전작 '운빨 로맨스'(2016)에서 김경희 감독님 사수였던 김윤철 감독님이 저를 캐스팅한 거예요. 그때 저를 인상 깊게 보셨다며."

-운이 좋으셨네요.

"진짜 캐스팅 되려고 총력전을 펼쳤어요. '전략적 폭격기'가 됐죠(웃음). 최종 미팅하는데 감독님이 중간에 감동하셨나봐요. 30분 있다가 '같이 합시다' 하며 손을 내미셨으니까요. 그런데 그 순간 저는 곧바로 믿지는 못했어요. 하도 그런 상처를 많이 받아서..."

-그런 상처라면요?

"제 지론이 촬영 들어가기 직전까지는 (캐스팅 된 걸) 믿지 않는다는 거예요. 처음에 캐스팅됐다고 했다가 나중에 말 바뀌는 경우를 많이 경험해서요. 그러면서 받은 상처가 굉장히 커요. 만약에 감독님이 캐스팅을 했는데, 돈 대주는 제작자분들이 (감독에게) '안 돼' 하면 못하는 거잖아요. 다행히 김윤철 감독님은 '내 이름은 김삼순'(2005)을 하신 분이어서 힘이 있으시죠. 그 분이 '정상훈 씁시다' 해서 원큐로 간 거죠. 그게 고마워서라도 얼마나 노력했겠어요. 캐릭터도 잘 맞고 김희선씨와 호흡도 되게 좋았어요."

-배우 정상훈으로 인식해주는 분들이 늘었어요.

"사실 처음 3~4부까지는 혹평도 많았어요. '드라마에 방해된다' 'SNL 보는 듯' 그런 반응들이었죠. 그러다 회차가 거듭되니 달라졌어요. 정상훈이 인생 캐릭터 만난 것 같다며(웃음) 동료 배우분들도 조금씩 인정을 해주셨고요. 물론 그렇다고 '양꼬치엔 칭따오' 닉네임을 제가 없앨 수는 없는 거예요. 아마 그건 평생 따라갈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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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훈은 2015년 SNL `글로벌 위캔드 와이` 코너에서 `무늬만 중국어`를 구사하는 중국 특파원으로 분해 일약 `SNL 스타`로 떠오른다. /사진제공=tvN



-상훈씨 대표 캐릭터 중 하나니까요.

"그렇죠, 초등학생들은 지금도 다 저를 개그맨으로 알아요(웃음). 근데 저는 그게 좋아요. 그 인기 덕에 자식들(정상훈은 삼둥이 아빠다)도 먹여 살릴 수 있게 된 거니까요. 지금도 길거리에서 마주친 아저씨가 '칭따오' 해달라고 하면 바로 해줘요. 어떤 분야든 제가 한 건 지워버릴 수 없는 거예요. 더 잘할 수 있는 것들로 영역을 점점 더 확대해 나가는 게 맞는 거겠죠."

유년시절 정상훈은 소극적인 아이였다. 친구가 몇 없었다. 사귈려야 사귈 수 없는 환경이었다. 초등학교만 네 군대를 옮길 만큼 이사가 잦았다. 집안은 가난했고 아버지는 일터가 자주 바뀌었다. "서울서 태어나 경기도도 갔다가 다시 서울, 서울, 서울, 서울···. 적응 좀 됐다 싶으면 이사를 가야 했어요." 성년이 되어 동사무소 초본을 떼어보니 두 페이지가 넘었다고 한다. 자연히 말 없고 조용한 아이로 자랐다. 그는 "죽어도 왕따는 되기 싫었다"며 "무던하고 평범해 보이는 게 그땐 최선이었다"고 했다.

-의외인데요?

"어쩔 수 없었죠. 그래도 중학교 때부터는 이사를 거의 안 갔어요. 아버지가 다행히 터를 잡으셔서."

-그 뒤로 변화가 있었나요?

"그럼요, 친구 관계도 쭉 유지 되고, 조금씩 제 안에 뭔가가 나오게 되더라고요. 슬금슬금 숨어있던 '끼' 같은 게 마구요(웃음)."

-이를 테면요?

"무조건 튀려고 했어요. 남들이 빨간 옷 입는다. 그럼 저는 반드시 노란색만 입고 다녔어요. 그것만 한달 넘게 입는 식이었죠. 때가 아주 꼬장꼬장해질 때까지 남들이 뭐라하든요(웃음). 심지어 그 덕에 스물 한 살 서울예전(서울예술대) 다닐 때 KMTV(음악전문 유선방송) 리포터도 했어요. 학창시절 입던 노란 옷이랑 똑같은 거 입고 인터뷰하러 다녔죠. 그때 HOT, 젝스키스를 인터뷰했어요. 당시 하하 씨도 절 보면서 '꿈을 키웠다'고 했을 정도였어요. 부러움 많이 샀죠. 인기도 많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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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정상훈 /사진=양유창 기자



튀고 싶다는 욕구는 이내 "TV에 나오는 유명인이 되겠다"는 목표로 확장된다. 영등포공고 졸업을 앞둔 시기였다. 마침 아버지는 등록금 지원이 가능한 회사로 옮긴 뒤였고, 그는 운좋게 서울예대에 들어간다. 그곳에서 그는 개그맨으로서 첫 꿈을 키운다. 서울예대 간판 동아리 '개그클럽'에 들어간 것이다. 그는 "개그맨만 되면 스타가 되는 줄 알았다"고 했다. 실제로 '개그클럽'은 당대 연예인 최다 배출소였다. 1986년 김정균, 표인봉 등이 세운 뒤 신동엽, 이영자, 김생민, 박상면, 홍록기, 이병진, 이동우, 안재욱, 송은이, 김한석, 정성화 등이 이곳을 거쳤다.

-노린 거군요?

"당시 우리나라 스타 탄생지로 최고였죠. 중앙대, 단국대, 한양대, 동국대보다 더 많이 나왔으니까요. (신)동엽이 형, (이)영자 누나 등 기라성 같은 분들이 죄다 여기 출신이에요."

-무슨 활동을 했어요?

"당시 2년제니까 1년에 한 번씩 축제 여는 거죠. 신입생들 오면 앞에서 공연하고요. 저는 4~5번 정도 한 거 같은데 그때 사수가 서울예대 연극과 (김)생민 형이예요. 요새 영수증으로 한창 인기죠. 뮤지컬 대스타가 된 (정)성화 형도 그때 사수였고, 송은이 누나랑도 공연했고요. 당시 콘서트 방식 개그를 한다는 게 꽤 독창적으로 받아들여졌어요. 그걸 그대로 백재현, 김미화 선배가 KBS에서 '개그콘서트'로 하게 된 거고요."

-'개그클럽' 반응은 어느 정도였어요?

"당시 같이 공연한 선배가 김진수, 이휘재, 김한석, 정성화, 송은이, 김생민, 심태윤 등 8~9명인데요. 진짜 대박났죠. 입소문 덕에 저도 시트콤에 데뷔했고요."

-그 시트콤이 SBS '나 어때'(1998~1999년)군요?

"네, 이란성 쌍둥이 동생 창민(최창민)의 찌질이 형(현민)을 연기했죠. 동생은 전교 1등에 서울대에 가는데 형은 전교 꼴등에 잔머리만 굴리고 인기도 없는 남자예요. 완전 비교 되죠. 거기 창민이를 짝사랑하는 예린이라는 여자가 나와요. 송혜교 씨가 연기했는데 제가 또 예린이를 10년 간 짝사랑하는 남자였어요."

'나 어때'는 정상훈에게 생애 첫 협찬을 받게 해준 추억의 데뷔작이다. 방영 기간 '리복' 본사로부터 연락이 왔단다. "원하는 만큼 가져가세요. 대신 방송에서 자주 입어주시고요." 그는 그 순간 주성지 영화 '소림축구' 속 한 장면이 떠올랐다고 한다. "소림사 거지들이 협찬받잖아요. 아디다스인가. 매장 문 박차고 직원들 뿌리치고 운동화부터 스포츠웨어를 싹쓸이하는 장면이요(웃음)."

-상훈 씨도 그랬어요?

"우리 형하고 같이 갔는데 이야, 이게 원하는 만큼 가져 가라는데, 그런데 그게 안 되더라고요. 부잣집에서 살았으면 맨날 신어봤겠지만 전 브랜드 운동화를 당시 한 번도 못 신어봤어요. 그때 이십대 초반인데, 한 켤레만 신어도 얼마나 기뻤겠어요. 근데 손이 안 가는 거에요. 결국 용기내서 쭈뼛쭈뼛 두 켤레만 챙겼어요. 직원이 그러더라고요. '더 안 가져가세요?' 하, 참 바보 같죠. 그래도 아버지가 그 신발 20년 넘게 신었어요. 밑창이 노랗게 다 닳을 때까지요."

-그런데 캐스팅은 어떻게 된 거였어요?

"당시 김태성 PD님이 배우 물색 중이셨어요. 당시 마음에 드는 배우를 못 찾으셨대요. 그러다 '개그클럽' 공연에서 절 보셨다네요. 그걸 계기로 캐스팅됐어요. 아직도 그 순간이 안 잊혀져요. 제가 집이 일산이었어요. 멀어서 집을 잘 못 갔어요. 친구 집과 형네 집을 오가며 지냈는데, 아마 추석 당일이었을 거예요. 아침에 부랴부랴 집 가려고 일어나려던 참이었는데 PD님이 전화를 주셨죠."

-뭐라시던가요?

"야, 상훈아. 너 나랑 목숨 걸 수 있겠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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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정상훈 /사진=양유창 기자



-처음 접해본 녹화 현장은 어땠어요?

"참 많이 혼났어요. 마음에 안 드셨나 봐요(웃음). 세트장에는 부조정실이라고 있어요. 거기서 감독님은 보통 큰 일이 아니면 조연출을 통해 이런저런 디렉션을 해요. '토크 백(Talk back)'이라는 전체 스피커로 모두가 들을 수 있는 게 있어요. 어지간한 큰 일이 아니고서야 이걸 잘 안 써요. 근데 첫 녹화부터 제게 굉장히 화가나셨나봐요. 코디네이터가 없다 보니 집에 있는 남루한 옷 입고, 분장도 학교에서 배운 대로 해서 갔거든요."

-뭐라셨는데요?

"그때 분장한 제 얼굴 한쪽은 시커먼데, 한쪽은 하얀 톤이었어요. 토크 백으로 엄청 소리를 치셨죠. '야, 얼굴이 왜 그리 시커멓고 연기는 왜 그따구야!' 사람들 다 듣는 데서 그렇게..."

-첫 번째 좌절이군요.

"와, 진짜 프로의 세계는 장난이 아니구나. 더 열심히 해야겠다. 근데 열심히 한다고 잘 되는 게 또 아니더라고요. 나중에 PD님이 그러셨어요. '야, 열심히 노력하는 사람 많아. 지구상에 엄청 많아. 네가 그 중 하나면 넌 그들과 경쟁해서 이길 수 없어. 중요한 건 얼마나 현명하느냐야. 주어진 시간 내에 얼마나 핵심을 노려서 노력하느냐야.'"

시작부터 순탄하긴 힘든 법이다. '나 어때'가 그랬다. 부족한 연기력에 대한 질타가 끊이지 않았다. 부끄러움에 얼굴이 울그락불그락 해지길 여러 번. 현장에서 눈물을 글썽인 적도 한 두 번이 아니다. 그걸 참고 연기해야 했으니 미칠 노릇이었다. 그는 "쥐구멍에 숨고 싶고 솔직히 죽고 싶은 순간도 있었다"고 했다. "그래도 지금 생각하면 다 뼈가 되고 살이 되는 얘기들이었던 것 같아요. 그 모든 걸 흘려 들었으면 지금의 제가 없었을 테니까요." 하지만 시련은 계속됐다. 김태균 감독에게서 "물건이다"라는 칭찬을 듣고 첫 영화 '화산고'(2001)에 출연했으나 '연기의 장벽'은 높았다. 배우로서 그릇이 작음을 매순간 실감했다. 자존감은 이미 무너진 지 오래였다.

-자신에게 쉽게 만족하지 못하는 편이군요.

"저는 그래요. 오디션이나 프레젠테이션에서처럼 단기간 상대의 마음을 설득하는 건 잘해요. 그런 싸움은 자신 있어요. 근데 연기라고 하면 참···. 제가 이후에도 작품을 여럿 찍었거든요? 드라마 '장길산'(2004)에서 유오성 선배 밑에 막내 말득이 역할을 했어요. 고수와 이다혜 씨 나오는 '그린로즈'(2005)에도 나왔고요. 영화는 '화산고' 다음에 '영어완전정복'(2003), '목포는 항구다'(2004) 등에 출연했어요. 근데 아, 그때마다 이런 생각이 드는 거예요. '왜 이거 밖에 안 되지?' '목포는 항구다'에서 박철민 선배 보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오디션 7차까지 봤고, 저도 왠만큼 한다고 여겼거든요. 그런데 너무 비교가 되는 거예요. 저 형이 저렇게 잘하는 근본엔 뭐가 있을까. 그렇게 한국에 연기 잘하는 선배님들을 쭉 생각해보니 '무대'라는 공통분모가 도출되더라고요. 대부분 연극생활, 대학로 생활을 거치셨던 거예요."

-그래서 무대로 가신 건가요?

"하고 싶다고 할 수 있는 건 아니죠. 2000년대 중반쯤 1~2년 간 일이 없었어요. 연기에 대한 회의는 커져가고 일도 없고... 이런저런 고민하며 저 스스로를 돌이켜봤어요."

-20대 후반 쯤이겠네요. 그 기간엔 뭘 했나요?

"시나리오 공부를 정말 열심히 했죠. 로버트 맥키의 'Story: 시나리오 어떻게 쓸 것인가' 같은 책도 읽으면서요. 근데 사실 제가 시나리오 쓴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죠. 잘 알지도 못하면서 한 거니까요. 세월이 다져진 게 있어야 좋은 게 나오는 거 아니겠어요? '목포는 항구다' 김지훈 감독님한테 한 번은 제가 쓴 걸 보여드린 적 있어요. 별 말씀을 안 하시길래 아, 이건 나랑 안 맞구나 했죠(웃음)."

-첫 무대는 뮤지컬 '아이 러브 유'죠?

"그렇죠. 그게 또 스토리가 있어요. 2006년이었어요. 정성화 선배가 대학로에서 뮤지컬 데뷔를 그때 해요. 무대 위에 있는 형을 보는데, 아! 너무 하고 싶더라고요. 그때 남경주 선배랑 최정원 누나 같은 뮤지컬 톱스타들이 죄다 나왔어요. 진짜 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전략을 모색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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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정상훈 /사진=양유창 기자



그 전략은 이렇다. 우선 친한 선배인 정성화에게 간곡한 부탁을 한다. "형, 한 번만 경주 형님 소개시켜줘, 제발···." 남경주는 서울예전 선배이자 뮤지컬계 '파워맨'이다. 운 좋게도 그는 정성화의 도움으로 남경주가 이끄는 워크숍에 들어간다. 뮤지컬계 인사들이 모여 주에 한 번 등산 가고 공연도 올리는 친목 모임이었다. 친화력 하나는 타고난지라 정상훈은 금세 귀염둥이 막내로 예쁨받는다. 뮤지컬계 여왕 최정원과도 그때 친해졌다. 6개월 간 서울에 있는 산들은 죄다 누볐다고 한다. "북한산만 네 번 갔고요. 관악산, 청계산 등 서울, 경기도의 어지간한 산들은 다 갔어요."

-예쁨받는 비결이 뭐였어요?

"도시락이요. 고기반찬부터 오징어 볶음 등 할 줄 아는 건 다 싸갔어요. 등산하다가 먹을 수 있는 것 중에 가장 맛있는 게 뭘까. 사과! 중간에 사과 먹으면 얼마나 꿀맛이겠어요. 이걸 드리면 선배들이 그래요. '이야, 어떻게 사과 싸올 생각을 했냐, 감동이야!' 필살기는 쌈이었어요. 북한산 백운대에서 도시락을 까면, 보통 소소한 햄 반찬 위주일 거잖아요. 저는 쌈을 챙겨가는 거죠. 거기에 오징어 젓갈 착착 털어놓고 막걸리 한 잔 하면···. 죽여주죠!"

-전략가시네요.

"음, 전 일단 밀어붙여요. 무조건 밀어붙여요. 뒷수습은 어떻게든 되겠지 하고요(웃음)."

-배우들과 함께 하면서 어깨너머로 많이 배웠겠어요.

"그럼요, 무대에 대해 슬쩍슬쩍 물어보고, 저 노래 배우고 싶어요 하면 '야! 와라 와! 내가 가르쳐줄게!' 그런 정도까지 관계를 텄죠. 그럼 이제 제작자를 만나봐야겠다. 근데 어떻게 만나지? 성화 형은 이제 신인이니까 힘은 없을 거고, 경주 형한테 얘기를 해보자! 형, 회식할 때 저도 한 번만 불러주세요. 그럼 '그래 그래 와' 하시죠. 그 자리에 가니 감독님, 제작자, 음악감독님이 계셨고요. 근데 제가 제작자가 파워가 가장 센 줄 그땐 몰랐어요. 감독님이 젤 센 줄 알았거든요. 라인을 잘 못 탄 거죠(웃음)."

-당시 뵌 감독님이 누구셨어요?

"한진섭 예술감독님이죠. 그런데 감독님은 벽이 좀 높아 보이더라고요. 말 수도 적으시고 굉장히 점잖으시고요. 아, 이쪽은 좀 힘들겠다 싶어서 음악감독님부터 두드렸어요. 마침 김정리 음악감독님이 일산에서 저랑 같은 동네에 사시더라고요. 그 분이 광성교회에 다니세요. 저는 무신론자였는데 '교회 다녀볼 생각 없냐'고 하셨어요. 교인이시니 전도가 목표이실 거 아니예요. 그래서 내가 신도가 되어드려야겠다! 결심하고 성경책 받고 교회도 나갔죠. 이거 실화인데, 한 번은 꿈에 하나님이 나오셨어요."

-하나님이요?

"진짜예요. 그래서 그 얘기를 음악감독님에게 하니까 그분이 '이야, 나는 이제껏 교인생활 하면서 한 번도 그런 꿈 꿔본 적 없다. 넌 믿음이 충만한 것 같다'며 놀라시는 거죠. 그렇게 제 사람으로 만들었어요. 그 덕에 음악감독님이 한진섭 감독님께 '이 친구 참 괜찮다' 추천도 해주시고, 제가 드디어 뮤지컬 오디션까지 보게 돼요. 이 모든 것이 6개월 간 작업한 겁니다(웃음)."

-오디션 날은 어떠셨어요?

"그게 말이죠. 오디션을 잘 보려면 몸이 '릴렉스' 돼야 한다는 걸 어딘가에서 주워들은 거예요. 그래서 오후 1시에 오디션이었는데 아침 8시에 사우나를 가요. 8시부터 12시까지 4시간을 사우나만 한 거죠. 릴렉스하려고요(웃음). 진짜 한 40번을 오간 거 같아요. 냉탕 온탕 냉탕 온탕. 그랬더니 힘이 쭉 빠져서 도리어 소리가 안 나와요(웃음). 연기는 자신 있었어요. 6개월간 선배들한테 많은 도움을 받았으니까요. 다행히 감독님도 연기는 마음에 드는 눈빛이더군요. 그런데 노래가 좀 부족하지 않냐는 거에요. 순간 덜컥했죠. 그때 음악감독님이 나서신 겁니다! 제가 성령 충만하게 전도된 상황이니까 저도 그분만 쳐다봤죠. 음악감독님이 다소곳하게 앉으셔서는 '제가 알아서 하겠습니다'라고 말해주신 거예요. 한 감독님이 '자신 있어요?' 되물으니 '자신 있고 말고요'라고 해주셨어요(웃음)."

-은인이군요.

"그러게 말이에요. 너무나 감사한 게, 매일 교회에서 개인 레슨을 받았어요. 음악감독님이 피아노 치시면 제가 노래하고요. 여기선 키를 올리고 발성을 어떻게 하고. 그렇게 지도 받고 뮤지컬 신인으로 무대에 섰죠."

무대는 신세계였다. 2007년 첫 공연한 '아이 러브 유'의 주인공은 단 네 명이었다. 오나라, 최정원, 남경주와 함께 정상훈은 정성화와 더블 캐스팅됐다. 무대라는 공간은 카메라 앞에서와는 전혀 달랐다. 짧게는 50회, 보통은 100회까지 같은 공연을 반복해서 올리는 식이었다. 자연히 상당한 연습량이 요구됐다. 가면 갈수록 허점이 보였고, 뭉뚱그린 부분들을 고쳐 이를 수습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 상대 배우와 호흡하는 법을, 무대 전반을 타고 흐르는 리듬을 몸으로 익혀나갔다.

-눈 앞에서 관객을 보는 느낌은 어떤가요?

"이들을 제게 동화시키고 설득시켜야 하는데, 그게 안 되면 반응이 바로 나타나요. 그걸 '귀신이 뜬다'고 해요. 시선을 내리깔고 휴대폰을 만지작 거리면 액정 불빛 때문에 관객 얼굴이 귀신처럼 보이거든요. 반대로 제가 잘 하고 있으면 몰입을 하시니 고개를 앞으로 좀 당기죠. 이건 아주 인간의 본능적인 부분이예요. 내 숨소리조차 주목하고 있는지, 그 반대인지 금방 알 수 있어요."

-어떤 경우에 귀신이 출몰하나요?

"연기 못할 때죠. 에너지가 부족할 때, 호흡도 나가버렸을 때, 그리고 진실하지 못할 때요. 가장 중요한 건 바로 진실하지 못할 때예요. 100번을 하는데 100번 다 진실하긴 힘들잖아요. 그래서 그 진실이라는 곳에 접근하기 위해 무수히 많은 것을 생각하게 돼요. 평소 명상도 하고, 인물에 대해 생각하며 일기도 써보고요. 진짜 그 인물이 되려는 거죠. 안 그러면 호흡을 놓쳐요. 그래도 놓치면 테크닉으로라도 해결해야 해서 무진장 연습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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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정상훈 /사진=양유창 기자



정상훈은 한동안 무대 생활을 지속했다. 그간 올린 공연만 30여 편에 달한다. 유쾌하고 활달한 그의 연기는 꽤 인기였다. 그만 나오면 객석 곳곳에서 웃음이 터져나왔다. 뮤지컬 '스팸어랏'(2013)이 한 예다. 선배 박영규와 함께한 이 공연에서 그가 맡은 건 중국 군인이었다. 여기서 구사한 '무늬만 중국어'가 훗날 '양꼬치엔 칭따오'의 중국 기자로 이어진다.

-SNL에 출연한 건 어떤 연유에서였어요?

"계속 조연 비중으로 코믹 캐릭터만 했어요. 그러다 '개그콘서트' '웃찾사' 같은 프로그램이 인기를 끄니까 대학로는 점점 관심 밖으로 밀려나더라고요. 2014년 무렵이었나 다시 백수였어요. 진지하게 연기를 그만둘까 싶기도 했어요. 사랑하는 아내, 아이들을 위해 안정적으로 밥벌이를 해야 하지 않을까 싶어서요. 미안하니까요. 그러던 와중에 손을 내밀어준 분이 있었어요. 김생민 형이었죠. 형은 제가 '아픈 새끼손가락' 같았대요. 그래서 신동엽 형한테 부탁을 했대요. 상훈이 합류시켜줄 수 없냐고요."

-'양꼬치엔 칭따오' 대박 이후 가장 큰 변화가 뭐였어요?

"그간 쌓인 빚이 2억 몇 천만원 정도 됐어요. 그 걸 다 털어냈죠. 그것만으로도 어찌나 홀가분하던지요."

-그렇게 왕성히 활동했는데도 빚이 있었다는게···.

"보이는 게 다가 아니예요. 공연해서 받는 돈이 사실 그리 많지 않아요. 중간마다 간극도 많고요. 하나 끝나면 연습하느라 6개월에서 1년까지도 쉬어요. 마이너스에 마이너스의 연속일 수밖에요."

-그러다 '덕혜옹주'로 스크린에 복귀하셨어요.

"SNL 팀 배려로 2015년 하순에 '맨 오브 라만차' 공연에 참여했어요. 그때 허진호 감독님과 제작자가 조승우 씨를 보러 오셨어요. 허 감독님이 '야, 조승우에 밀리지 않는 저 사람 누구냐' 하고 주목해주신 거죠. 복동이 역할에 제격이라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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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덕혜옹주`(2016)에서 배우 정상훈은 독립운동가 복동으로 분해 보기 드문 진중한 연기를 선보였다. /사진제공=롯데엔터테인먼트



-'덕혜옹주'에선 조연이지만 극중 비중이 적지 않았어요.

"대본 받아보니 이야, 손예진 씨도 나오고 박해일 씨도 나오고... 이건 무조건 해야겠다고 생각했죠. 이제와서 하는 말인데 편집된 게 좀 많긴 해요. 극 후반에 자동차 타고 로드무비처럼 정신병원으로 가거든요. 거기서 복동이 장한과 주고받는 대화가 참 많았어요. 차내에서 웃고, 울고, 농담도 하고... 그래도 편집된 완성본에 만족해요. 진짜 최선을 다 했거든요."

정상훈은 지난해 11월 SNL에서 하차했다. 이제부터는 배우의 길에 전념할 생각이다. 그는 이달에만 벌써 신작 두 편을 선보인다. 사극 '흥부'(14일 개봉)와 범죄 코미디물 '게이트'(28일 개봉)다. '흥부'에서 그가 맡은 김삿갓의 극중 비중이 작은 편이라면 '게이트'에선 난생 처음 주연이다.
그는 "주조연 정도는 된다"며 멋쩍게 웃었다. "꽤나 매력 있는 사채업자에요. 악역인데 위트 있는 악역이랄까요? 그렇다고 가볍지만은 않고 적당히 무게감도 있고요." 그렇게 말하는 그에게서 순간 오버랩되는 배우가 있었다. 짐 캐리였다. 코믹한 이미지 이면에 진중함도 갖춘 보기 드문 명배우. 언젠가 시일이 조금 더 흐르면 그가 '한국의 짐 캐리'로 불리는 날이 오진 않을는지. 이 생각을 전하니 그의 눈빛이 순간 반짝인다. "제 꿈이 바로 그거거든요!"

[김시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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