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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주 이상룡 선생 망명 때 만든 ‘가족단 명첩‘ 첫 공개
경술국치 때 결성..직접 쓴 취지서 등 담겨
기사입력 2018.09.14 13:50:37 | 최종수정 2018.09.14 13:5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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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주 이상룡 선생이 망명할 때 결성한 것으로 보이는 가족단 명첩 [안동시 제공]

(안동=연합뉴스) 김효중 기자 = 임시정부 초대 국무령을 지낸 석주 이상룡 선생이 가족을 이끌고 만주로 망명할 때 결성한 것으로 보이는 '가족단명첩'(家族團名帖)이 나와 관심을 끈다.

14일 안동시와 경북기록문화연구원에 따르면 지난 5월부터 벌인 '안동댐 수몰마을 생활사 복원을 위한 아카이브 사업' 과정에서 이를 발견했다.

석주 선생 유고(遺稿)와 아들인 동구 이준형 선생 문집에서 언급한 적은 있으나 실제로 존재가 드러난 것은 최초이다고 한다.

안동댐 준공으로 마을이 물에 잠긴 안동 도곡동 출신 고성 이씨 이종기(91) 씨가 보관하고 있던 것이다.

일부 내용만 공개한 명첩 표지에는 '무오(戊午 1918년) 11월 20일과 1910년 경술(庚戌) 5월 시작'이라는 글자가 적혀 있다.

첫 장에는 당시 석주 선생 이름인 이상희를 단장으로 기록했다.

이상동, 이봉희 등과 탑동 종손, 평지파 종손 등 집안대표 66명 명단을 올렸다.

석주 선생이 직접 쓴 가족단 취지서와 이준형 선생 글이 실려 있다.

취지서에는 석주 선생이 만주로 떠나며 종손 부재 때 가족 운영을 당부하는 말, 경술국치로 나라 잃은 데 따른 가문과 문중 사람 각오, 삶을 당부하는 말이 있다.

그는 가족단을 결성하고 이듬해인 1911년 일가를 이끌고 만주로 간다.

이준형을 비롯해 명첩에 이름을 올린 사람 가운데 상당수가 따라갔다.

안동에 남은 사람들은 독립운동을 하거나 지원 활동을 하며 문중을 지켰다.

아들 이준형 선생과 손부 허은 여사 일가가 귀국한 뒤 도곡동에 들어와 살다가 1939년에 가족단을 해체한 것으로 본다.

독립운동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판 임청각을 되찾을 때도 가족단이 중심에 있었다고 한다.

경북기록문화연구원 관계자는 "가족단 명첩 내용 일부만 공개했으나 독립운동사 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될 것으로 본다"며 "구체적인 내용을 알려면 더 연구해 봐야 한다"고 말했다.

kimhj@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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