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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팝으로 10억 번 男, 이젠 K-팝 이끈다
기사입력 2012.07.25 09:10:07 | 최종수정 2012.07.25 10:0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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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피페이스 이주원 대표 인터뷰

X-재팬에게 배운 노하우로 달샤벳 세계진출




해피페이스 엔터테인먼트의 이주원 대표(40)는 국내에서 손꼽히는 일본통이다. 중앙대학교에서 일어학을 전공한 그가 대학교 4학년이던 당시 처음 일본에 간 건 일본 대중문화에 대한 관심 보다는 사실 생계에 대한 이유가 컸다.



◯ 일본 대중문화 개방 이전, 그 많은 CD들은 누가 가져왔을까?

“20대 중반에 남들보다 일찍 결혼을 했어요. 아직 학교도 졸업하기 전이라 가족을 위해 뭐라도 해야 한다는 책임감에 무작정 일본에 갔던 거죠. 일본어 전공이라는 거 하나로 말이죠. 그때부터 소위 보따리 장사를 시작했어요.”

90년대 중반 그가 일본에서 짊어지고 들어온 것은 일본 대중음악 CD였다. 일본 대중문화가 정식으로 개방되기 전, 국내에는 일본 음악을 듣는 젊은이들이 상당했고 일본의 전설적인 밴드 엑스재팬(X-Japan)이나 라르크앙씨엘, 현재까지도 큰 사랑을 받고 있는 아무로 나미에 같은 일본 가수들의 앨범에 대한 수요가 상당했던 시절이다. 실제로 국내에서 엑스재팬 음반만 비공식적으로 100만장 이상 팔렸다는 통계가 있을 정도다.

“중고등학교에서 한 반에 10명 정도가 일본 음악을 들었던 시절이었어요. 마니아 층이 정말 두터웠죠. 이제는 역전됐지만 당시만 해도 상대적으로 일본 대중음악이 높이 평가 받았던 것도 사실이에요. 여기에 금지된 것에 대한 호기심도 많았을 거 같아요. 이 때문에 국내에 일본 대중음악 마니아 집단으로 자리를 잡을 수 있었고요.”

1997년 국내에서 가장 큰 팬덤을 가지고 있던 엑스재팬이 해체하고 이듬해 멤버 히데가 사망하면서 엑스재팬 음반에 대한 수요는 폭발적으로 늘었다.

“일본에 왕래하는 횟수가 늘기 시작하면서 잠실 중앙상가에 작은 매장까지 만들었어요. 일본 대중음악 전문매장을 차린거죠. CD 뿐 아니라 일본음악 잡지, 가수에 관련한 MD 상품들을 주문받고 구비해 놓고 판매를 시작했어요. 국내 최초의 공동구매 였죠.”

90년대 일본 대중음악에 관심이 있던 사람이라면 중앙상가 1층에 JRS(Japan Rock Seoul)이라는 곳을 기억하는 이도 분명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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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 록 음악의 전설 엑스재팬이 공짜로 한국에서 공연을?

1998년 일본 대중문화 1차 개방이 시작됐고 1999년 2차 개방이 되며 그도 보따리 장사 수준을 벗어나 일정부분 정식 수입을 시작했다. 이주원 대표도 2000년 JRS엔터테인먼트를 정식으로 설립했다.

“2002년 한일월드컵을 전후로 국내에서 일본 대중음악 공연도 정식 허가가 났어요. 2002년에 일본서 엑스재팬 필름 기그(X-Japan Film Gig, 극장에서 공연실황을 상영하는 이벤트)가 진행된다는 소식을 접하고 일본으로 넘어갔죠. 일본 엔터테인먼트 시장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르는 한국 남자가 엑스재팬의 소속사 사무실을 무작정 찾아 간 거에요.”

이 한국남자의 무모함은 엑스재팬의 리더 요시키를 감동시켰다. 결국 요시키는 극비리에 입국, 이주원 대표가 주최한 ‘엑스재팬 필름기그 코리아’에 깜짝 출연해 즉석 공연까지 했다. 일본에서도 필름기그 투어 30여개 장소 중 많아야 1~2개 공연장에서 벌어질까 말까한 초특급 이벤트였다. 특히 요시키의 깜짝 내한은 개런티가 전혀 없었다. 당시 필름기그를 위해 엑스재팬 소속사가 판매한 비디오 테이프 원본이 우리 돈 5천 만원이었던 것을 생각하면 더 놀라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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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 대중 음악도 일본 못지 않게 훌륭하다

당시까지 이주원 대표가 벌어들인 수익은 10억원 가량 됐다. 그리고 그는 새로운 모험을 시작했다. 본격적으로 국내 엔터테인먼트 사업을 시작한 것.

“우리 음악도 일본 못지않다는 자부심이 생겼어요. 법인도 설립했으니 본격적으로 우리 대중음악을 해봐야겠다고 마음을 먹었죠. 당시 힙합 쪽에 가장 실력 있는 친구들이었던 CB매스(현 다이나믹듀오)를 영입하고 에픽하이를 발굴 했어요. 일단 공연을 잘하고, 멤버들의 음악성도 뛰어나서 완성도 높은 앨범을 만들 수 있는 친구들이었죠.”

이주원 대표가 힙합에 관심을 가진 것은 우리 대중음악의 시장이 앨범 못지않게 공연 쪽에서 성장 가능성이 높았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자신이 넘쳤던 만큼 판단 미스도 많았죠. 힙합이 당시에는 마니아 음악이었거든요. 전 경험상 마니아들의 음악이 성공할 수 있다는 믿음이 너무 컸었던 것 같아요. 사실 공연은 당시만 해도 현재처럼 그렇게 큰 시장이 아니었고 불법다운로드가 판치던 시절이었거든요. 결국 벌어놓은 10억을 한푼 남김없이 모조리 탕진하고 나서야 깨달았죠. 하하”

그가 처음 발굴한 에픽하이는 앨범을 모두 만들어 놓고 다른 회사에 소속을 옮겨 데뷔 앨범을 발표하게 됐고 당시 큰 히트를 기록했다. 불운일 수도 있겠지만 국내 엔터테인먼트 구조를 처음부터 배울 기회가 됐다. 이후 이 대표는 스타제국 엔터테인먼트에서 매니저 생활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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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중문화 역사는 돌고 돈다

2009년 1월, 이주원 대표는 이트라이브(E-Tribe)라는 국내 최고의 작곡가를 영입, 현재의 해피페이스 엔터테인먼트를 설립하고 2년 간의 준비 끝에 걸그룹 달샤벳을 데뷔 시켰다. 이 대표는 달샤벳을 아시아 시장 전체를 겨냥한 마니아 걸 그룹으로 기획했다.

“K-팝 열풍이 들불처럼 번지기 바로 직전이었어요. 걸 그룹은 포화상태였고 뭔가 확실한 노선이 필요했죠. 무엇보다도 국내 뿐 아니라 해외 마니아를 구미를 만족시킬 만한 일관된 색깔을 갖춰야 한다고 생각했죠. 제가 J-팝으로 비즈니스를 할 때 배웠던 것 들이죠.”

실제로 달샤벳은 데뷔 1년 반 동안 고집스럽게 일관된 스타일을 고수했다. 걸그룹들이 매번 신곡 때마다 콘셉트를 바꾸는 것과는 다른 행보였다. 그리고 대중음악은 마니아를 만들어야 한다는 그의 경험에서 비롯된 전략적 방향은 적중하고 있다. 달샤벳은 일본을 비롯해 중국, 동남아 등 에서 끊임없이 러브콜을 받고 있고 중국 대형 매니지먼트사와 정식 계약을 맺어 중화권 전체에 진출할 예정이다.
또 9월 태국에서, 11월 인도네시아에서 정식 데뷔를 앞두고 있다.

“종종 남미와 유럽, 아시아 전역에서 K-팝 팬들이 우리나라 가수들의 CD를 공동구매 하고 자발적으로 팬클럽을 만들고 공연을 보러 온다는 뉴스를 접하게 됩니다. 그리고 15년 전 일본서 보따리로 CD를 사오다가 이제는 K-팝으로 아시아 시장에 진출하겠다고 목표를 세우고 해외 공연을 기획하는 저 자신을 보면서 대중문화 역사는 돌고 도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매일경제 스타투데이 이현우 기자 nobodyin@mk.co.kr/사진 팽현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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